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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찰대본산 금정산범어사   페이스북 
No.17500  |  2014.08.29 11:58:18  |  17354 Count 아키포털

금정산 범어사.

 

걸어올라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도 않고, 산세가 좋으며 등산로도 많이 보수하여 상당히 운치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풍수지리적으로 보면 배산임수의 지형도 아니며, 배후에 주작이 감싸고, 전면에 현무가 고개를 쳐들며, 좌측에 청룡이 안으로 굽어살피고, 우측에 백호가 기세를 펼치는 지형도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주작이 알을 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향이 좋아 바람을 막아주고, 볕이 잘들어 산이 푸르른 좋은 지형을 타고났다.

이렇듯 풍광을 즐기며 계속 올라가면 갈래길이 나오고, 늘어선 석재 위를 걸어 100미터 정도 올려다보면 그 유명한 일주문이 자리를 작보 있다.

한없이 걸어올라 처음 만나는 문이며, 사찰로 한걸음 내딛는 진정한 문이기에 더욱 반갑다.

이 일주문은 범어사로의 완충열활을 하는 삼문(三門) 중 첫번째 문으로 중생의 세계(俗世)에서 부처의 성역으로 들어서는 첫번째 관문을 뜻한다.

정면에서 쳐다보면 한 일(一)의 획을 그어놓은 듯 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위에 맞배지붕(박공)을 한 독특한 양식을 가지고 있다.

한 일(一)로 보이는 일주문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며, 일주문을 넘어서기 전에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또한 세속의 번뇌를 벗어버리고 일심이 되어 들어서라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렇게 일심의 마음으로 들어설 때 문 앞에서 합장반배(合掌半背 ; 손을 맞대고 가슴부근에 두어 허리를 반으로 굽히는 것)를 하는 것이 관례이다.

이 일주문의 기둥은 네개가 한줄로 늘어서 삼간의 구조(一柱三間)를 원칙으로 하는데 불교의 법화경에서 말하는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과 연관된다.

이는 화엄도량 정각사에서도 일주삼간의 원칙으로 일주문과 같은 형태를 취함으로써 불교정신을 건축물에 담아내려한 숨은 뜻에 절로 감탄이 나오게 만든다.

특히 일주삼간은 중생의 바탕과 능력에 따라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로 나누어진 불교의 여러 교법을 오직 성불을 지향하는 일불승(一佛乘)의 길로 향하게끔 한다는 사상적 의미가 담겨 있다.

문의 전면에는 각각의 문위에 맞춰 편액이 걸려 있는데, 가운데 조계문(曹溪門)이라는 작은 편액은 조계종의 사찰임을 나타내고 있고, 오른쪽의 선찰대본산(禪刹大本山)이라는 편액은 범어사가 선종의 으뜸사찰임을 알려주고 있으며, 왼쪽의 금정산 범어사(金井山梵魚寺)라는 편액은 산명과 사찰명을 밝힌 것이다.

 

 

박공양식에서는 주로 주심포양식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일주문은 4개의 기둥에 받쳐진 다포양식으로 대단히 견고해 보이도록 되어있어 대단히 특이하다 할 수 있다.

익공 위에 소로와 첨자가 올라가고, 그 위에 또 다른 소로와 첨자가 올라감으로써 상부의 하중을 양분하고 또 양분하여 지붕의 분산된 하중을 기둥으로 집중시켜 준다.

소로와 접시소로, 익공과 메뚜기머리의 단청을 이어줌으로써 나오는 통일감과 우아함은 미의 정점을 달린다.

 




 

일주문의 옆으로 풍판을 덧대어 내부가 들여다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단아한 형상을 만들었다.

얼핏 멀리서 보면 배가 떠있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하단부의 도리와 보의 단청으로 인해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든다.

지붕에는 백아토를 사용하여 마구리 부분을 마감이 되어있고, 중도리의 마구리에도 단청을 넣어 한층 더 우미(優美)를 돋보이게 한다.

 




 

보편적으로 창방위에 주두가 올라가고 첨자와 살미첨자위에 소로가 올라가서 장혀를 받쳐준다.

그러나 일주문은 보아지 위에 창방이 올라가고 그 위에 바로 장혀를 올려둠으로써 단순미학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일주문 주두부분의 확대 사진으로 보아지와 주두 부분이 섬세하게 깍여 정확히 돌기둥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정확히 결구(結構)되어 있는 모습이 그랭이 질을 생각해낸 옛 선조의 지혜에 다시한번 탄복하게 한다.

 




 

일주문에서 일심을 다짐하고 마음을 다스린 이후에 만나는 두번째 문인 천왕문

사천왕상은 불법(佛法)의 수호신으로써 성역에 이르기 위해 속진(俗塵)을 걸러내는 통과의례에 해당된다.

일심으로 자신의 죄를 속죄(贖罪)하고 허물을 한커풀 한커풀 벗겨내며 속세(俗世)의 번민을 벗어버리는 장(場)이 된다.

이러한 천왕문은 앞서 올리 일주문과의 구조적 차이도 가지게 되는데, 먼저 맞배지붕에 주심포 양식이라는 점이다.

또한 겹처마로 평고대가 완만하게 곡(曲)을지어 귀솟음을 함으로써 착시교정과 함께 한국전통양식의 미(美)를 여실히 나타내어주고 있다.  





 

조선초기에 주심포 양식을 간략화한 익공양식은 새의 날개처럼 첨자 장식을 장식효과와 주심도리를 높이는 효과를 가지고 있는데, 조선초기 이후의 소규모 건축물에 많이 나타나고 있다.

천왕문 또한 익공양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살미첨자로 인하여 멀리서 바라보면 주심포 양식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자아낸다.

 




 

천왕문의 초석은 막돌초석으로 원형을 그대로 살려놓아 다듬돌초석과는 달리 자연스러움을 살아있다.

 

이렇듯 안정감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주는 막돌초석은 조선시대에 많이 사용되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내소사의 대웅전이나 하동의 쌍계사 후문에도 이와같은 막돌초석을 사용하고 있다.

다듬돌초석은 거진 궁궐에서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범어사에서는 일주문이 원주형 다듬돌초석을 사용하여 루건축(樓建築)의 대표로써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천왕문의 내부 천장은 구조를 여실히 나타내어 주고 있는데, 중도리와 종도리의 형태가 특이하다.

서까래의 채도를 높이고 녹색으로 단청함으로써 더욱 구조가 눈에 띄인다.

초록은 예로부터 자연을 상징하며, 사람들의 심신의 피로를 안정시켜주는 색으로 현대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천왕문의 녹색은 자연의 색이며, 조화를 상징하고, 자연계의 균형의 색으로도 사용되어지고 있다.

현대와 많은 점이 유사하나 신을 모시고, 불교의 교리를 담아 단청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평주(고주로 보기엔 그렇지 못하다)의 위에 대들보가 얹혀있고, 그 위로 대공이 중보를 받고 있다.

간사이로 보아 사분변작법으로 얹혀진 것으로 보인다.

대들보는 화려하고 한국 고유 사상적 신화속의 신수(神獸)인 룡(龍)이 자리를 틀고있다.

보통 우리가 알고잇는 신수는 사신수로 동방의 청룡(靑龍), 서방의 백호(白虎), 남방의 주작(朱雀), 북방의 현무(玄武)로 알고 있는것이 보편적이다.

이 사신은 동서남북의 네 방향과 사계, 그리고 풍수지리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으나 황룡은 거의 들어본적이 없다.

사신수는 방위신으로써 자주 등장하지만 황룡은 중국에서 등장하는 오신수로써 방위신에 속하여 황제위를 상징한다.

중국 이외의 국가에서는 방위신에 속하지만 황제를 상징한다는 이유로 오신수에서 제외되어 사신수로 불리어진다.

하지만 오행에서는 중요한 의미로 황룡은 토(土)를 의미하고, 천문(天文)으로 3차원(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에 대응하고, 오장육부의 오장에서 비장에 대응하게 되며, 계절에서는 환절기에 대응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신수이다.

어떻게 보면 모든 신수 위에 군림하고 조화를 관장하는 황룡을 대들보에 그려넣었다는 것은 그 만큼 대들보의 중요한 역활을 상징하는 것있수도 있으나, 그 당시 중국과 불교의 교리에 많은 영향이 있었다고 짐작이 된다.

 




 

천왕문의 내부는 재미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칸으로 들어서 내부를 살펴보면 기둥으로 대들보의 중앙을 받치고,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걸었으며, 다시 화반대공을 세워서 종보를 걸고, 그 위에 또 다시 화반 대공을 세워서 종도리를 받고 있다.

 




 

화반은 공포와 공포사이에 존재하며, 공포벽의 밋밋함을 채움으로, 또한 도리의 처짐으로 오는 하중을 창방으로 옮겨주어 기둥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방위신인 사신 중 동방위를 맡고있는 청룡을 그려넣어 하늘의 기를 받아들이는 역할로 사용해왔으며, 예로부터 농작을 중요시 했던 비와 구름을 부르는 상징으로도 지대한 역할을 하는 청룡이 단청되어 있다.

 




불이문(不二門)

사찰로 들어서는 문에서는 마지막에 들어서는 마지막문으로 해탈문이라고도 불린다.

불이(不二)는 분별을 떠난 불문(佛文)의 절대의 경지를 말한다.

즉 부처와 중생, 선악(善惡), 공(公)과 사(私), 반야와 번뇌, 유(有)와 무(無)가 둘이 아니며,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둘이아니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문으로 이 문에 들어오면 이 모든 진리를 깨닫고 잃었던 본바탕을 되찾으라는 불도(佛道)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천왕문과 함께 창건되었으며, 조선 후기의 건축적 양식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건축물의 정면에는 세칸, 측면으로 한칸의 평면을 가지고있으며, 본 사진을 보면 맞배지붕에 겹처마를 하고 있다.

낮은기단 위에 원통형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앞뒤의 주칸에 문틀을 짜서 쌓여닫이의 판장문을 달았으나, 중생을 위하여 항상 개방을 해두고 있다.

공포는 내외(內外) 2출목의 주심포식으로 포작을 했지만 다포식의 공포와 흡사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주두아래에서 창방 뺄목을 살미로 내어 쇠서가 뾰족하게 치켜드는 형상으로 단청하였는데 쇠서의 끝에 만개한 연꽃과 봉오리를 초각하고 내부로 한몸처럼 보아지를 틀어서 단아하지만 번거로운 느낌을 준다.

범어사로 들어서는 마지막문인 불이문을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사바의 예토(穢土)를 지나 정토(淨土)로 통하는 길이 열린다고 한다.

심신이 깨끗하고 정수기로 거른듯 마음에 한톨의 더러움이 남아있지 않다는 의미와 상통(相通)한다.

공포벽을 없애고 화반만 올려놓음으로 써 트임의 우미(優美)를 장식했다.

공백을 매우지 않고 그 자체가 바탕이 되어 더욱 화반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커다란 계기가 된다.






서까래의 아래에 알매흙이 보인다.

보통 용마루에는 새우흙을 사용하게 되는데, 서까래의 틈새를 막고 산자위를 견고히 하기 위하여 알매흙을 쳐바른다.

공포는 주심포식이나 다포양식처럼 생긴석이 특징인데, 화반 또한 다포식 공포를 대변하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불이문은 덤벙기초 위에 원형초석을 올려두었으며, 어칸과 협칸으로 들어서는 문턱은 상당히 높다.

이로 인하여 넘어지는 아이들이 부지기수인데, 그 만큼 문으로 들어설 때 조심스럽게 몸을 단정히 하여 들어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방정맞게 들어오는 것은 불도(佛道)에 어긋나며, 마음이 단정치 못한자는 그 마음을 다스려 정도(正道)에 들어서라는 의미와도 상통한다.

물론 그 의미를 알고서 넘어서면 새삼 이렇게 지어진 건축물에 감탄사와 마음을 겸허하게 그 의미를 되새기며 넘어갈 것이다.

현대인의 급박한 생활에 익숙하여 방문의 목적에만 급급하여 지나치다 넘어지면 괜시리 문지방에만 욕지기를 퍼붓게 된다.

진정 어느 곳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그 의미를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한발 한발 내딛으며 주변을 살펴보면 그것이 진정한 관광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보제루(普濟樓)

불이문에서 30단 정도의 석계를 올라서면 드디어 도달하는 중단구역(中段區域)의 첫번째 건축물이다.

널리 중생을 제도(濟度;일체 중생을 부처의 도로써 고해(苦海)에서 건져 극락 세계로 인도해 주는 것.)한다는 보제의 뜻에 부합되게 이 건물에서는 예불(禮佛)과 법요식(法要式)이 거행된다.

건축물의 구조는 전통고건축에서 필요로 하는 착시교정기법이 대부분이 들어가 있다.

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 우주의 안쏠림과 평주, 우주의 민흘림, 귀솟음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형태는 지금과 거의 비슷하게 띄고있는데 정면 다섯칸, 측면 세칸의 평면으로 주심포식에 이익공의 공포를 가구(架構)하고, 그 위로 팔작지붕을 올렸다.

하지만 오래전과 조금 변한게 있는데 오래전에는 불이문쪽의 판벽사이로 쌍여닫이의 판장문을 달았었다고 한다.

지금은 막돌 덤벙주초 위로 석주를 받치고 그 높이만큼 징두리 벽을 석판으로 막아서 중정 쪽에만 네짝의 미서기창을 달았다.

이 역시 공포의 형상은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양식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주두의 위로는 초익공과 이익공을 쌓고 1출목을 짧게 내어 외목도리를 받게 하였고, 겹처마를 두었다.

창방과 장혀의 사이에는 복화반을 1구씩 얹고 나머지 부분에는 회벽마감 위에 벽화를 그려 두었다.

또한 다른 사찰과는 조금 다른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데 다른 사찰의 경우에는 보제루의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으로 가는데 반면 범어사의 보제루는 정면의 석계단을 올라가 건물의 옆으로 돌아서 가도록 되어있다.

 





보제루는 규모가 규모인 만큼 겹처마와 귀솟음으로 착시를 보정하고 있다.

서까래 사이로 속내를 보여주지 않기 위한 부연개판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자연 모습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 갈토를 이용하여 막고 그 위에 색색이 단청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며 많이 빛을 바래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추녀의 좌우로 갈모산방이 들어서고 그 위로 선자연이 멋들어지게 날개를 펴는데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한 몫을 차지 하고 있기에 이를 계산하는 목수야 말로 대목수(도편수)라고 한다.

 





종각(鐘閣)

종루(鐘樓)라고도 불리는 종각은 아침 저녁으로 예불 또는 의식이나 행사등에 쓰이는 범종(梵鐘)이다.

원래 종루는 다른 자리에 있었는데 일제 초기에 지금 사진에 보이는 곳으로 그대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2층의 누각에는 정면 세칸, 측면 세칸으로 사범물(四法物-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板), 목어(木魚)-)을 갖추었다.

막돌덤벙 주초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2층에 누마루를 깔아 다시 2층 기둥을 세우고, 그위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을 얹었다.

원래 1층은 아래올린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누하주를 전부 열었으나 현재는 간벽으로 막아서 기념품 판매점으로 꾸몄다.

절간에서 그 돈 좀 더 벌기위해서 이와같은 일을 했다는 것이..참..기가막힐 일이다.

공포는 미륵전과 흡사한데 창방 뺄목을 돌출시켜서 양봉형상으로 주두를 삼싸고 있고 살미첨자는 끝을 만곡시켜 연꽃을 초각하였다.

그리고 행공첨자와 제2첨자를 놓고 평보에 장혀와 도리를 결구하고 보아지를 틀어놓았다.

그나마 옮기면서 덤벙주초가 그대로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종각 원본 - 출처 : 네이버]






범어사의 대웅전은 보는바와 같이 다포식의 공포양식으로 그 특성과 건축기술을 보여주고 있는 좋은 건축물이다.

목조건축물의 양식 발전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화마에 먹혔다가 다시 복원된 숭례문과 더불어 크게 주목되는 건축물이다.

정면과 측면은 세칸의 평면을 짜고 있으며, 다포식의 공포로 맞배지붕을 올려놓았는데, 불상을 모시는 불조 건축물로는 대단히 특이하다 할 수 있다.(규모가 클수록 팔작지붕으로, 규모가 작을 수록 맞배-박공-지붕을 한다.)

겹처마를 지닌 대웅전은 다른 건축물에 비해 부연(敷衍)은 길게 내었으며 다포양식인데 반해 맞배지북이라는 점에 의하여 전후면으로만 공포를 놓고 측면에는 주두 아래에 창방과 뺄목을 첨자로 만들어 장혀와 도리를 받치게 하고있다.

그래서 뺄목들이 짧기 때문에 측면으로 풍판을 달았고, 공포는 어칸에 3구 협칸에는 2구의 보간포(褓間包)를 높고 내외로 각각 3, 4출목을 짰다.

살미첨자는 제3첨자까지 쇠서로 만들고 그 끝을 크게 원형 곡선으로 제작함으로써 턱을 세웠다.

기단과 석계는 초장때 축조된 그대로인데 5단 석계의 이석은 와형으로 공글려 불국의 상징인 동백을 초각하였다.(상징은 동백도 있지만 연꽃이 더 큰 이상을 차지한다.)

창호는 전면을 모두 개방해서 달았는데 어칸을 넓게 잡아서 아래 판장을 댄 사분합(四分閤) 빗살문을 좌우 협칸에는 같은 형상의 삼분합문을 달았다.

중앙에는 부처인 석가모니를 모시고 있는데 그 앞에 석계(石階)의 중앙 또한 신성한 상징으로 써 함부러 지나다니지 못하도록 막아놓고 있다.

 





빼곡한 공포를 보면 갑갑한 면도 있으나 이 또한 멀리서 보았을 때와는 다른 묘미가 아닐까?

평고대의 곡선은 그 아름다움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색조차 바래지 않고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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