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뉴스
[서양 근대건축사 산책]바이젠호프지드룽(Weissenhofsiedlung, 1927) 인류 최초의 주택전람회
2014-09-29 13:14:38 | 아키포털
십수 년 전 신도시 분당에 국내 최초로 주택전람회가 열렸다. 국토개발원이 제안하고 토지개발공사가 주관했는데, 당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건축사들에게 대지를 분배해 설계하게 했고 각 건축사의 작품마다 시공자가 지정됐다. 이 해프닝이 한국 건축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였는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용두사미가 됐다. 장사가 안될 것 같았는지 공사를 포기한 시공사가 나오게 됐고, 결국 전체 규모의 반 정도만이 지어져서 분양되었다. 유럽의 건축 역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사건과 65년 전 독일의 주택전람회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람회는 새로운 수익창출의 수단으로 20세기 초 독일에서 있었던 전람회의 형식만 표절한 분당의 것과는 다르게 SF영화의 일대 혁명을 가져온 매트릭스( The Matrix,1999)에서 나오는 ‘빨간약’과 ‘파란약’ 선택의 순간만큼 유럽 근대건축흐름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이 주택전시는 1907년에 결성된 독일공작연맹과 1926년경에 결성된 독일 건축사들의 사조직인 ‘데르 링(Der Ring)’의 주도로 유럽국가의 건축가들을 초빙해 1927년 스투트 가르트 근교 바이젠호프 언덕에서 개최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거주형식에 대한 실험,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공간에 대한 논의,최신 시공방법의 적용 그리고 표준화와 같은 당시 유럽사회에서 건축이 당면한 중요한 이슈들을 내세웠지만, 전후 독일 자국의 경제적 역량을 유럽시장에 알리고자 하는 정치적 의도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행사는 당시 독일공작연맹의 회장이었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Rohe, 1886-1969)와 데르 링의 총무였던 후고 헤링(Hugo Haring, 1882-1958)의 극명하게 다른 건축적 태도로 인해 시작부터 불씨를 안고 출발했다.(당시 미스와 헤링은 독일 건축계의 소장파 건축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고, 사무실을 공유했던 절친이었다.) 초기 마스터플랜을 보면 이 둘의 태도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헤링의 안은 각각의 건물들이 대지의 물리적 맥락에 반응하여 독립되어 있지 않고 다른 건물과의 관계 속에 위치해 있음을 알 수있다(그림2).
그러나 이 안은 독일공작연맹측에서 실현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고 미스가 이를 수정해 제시하게 된다. 수정된 안을 보면 각각의 건물은 독립된 하나의 오브제로 대지의 물리적 맥락과 거리를 둔 채 배치돼 있다.(그림 3)
이 극명한 태도 차이로 인해 둘의 심기가 불편해질 대로 불편해져 있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불거진다. 전시에 참여하는 건축가들에게 지급되는 적은 설계비 문제였다. 헤링은 진취적 건축집단의 총무로서 정상적인 설계비를 요구했으나 독일공작연맹의 회장 및 전람회의 책임자로서 미스는 최초이자 중요한 건축사건인 만큼 전향적인태도를 강조했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헤링과 데르 링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에릭 멘델존(Erich Mendelsohn,1887-1953)은 참여자 명단에서 스스로 빠지게 된다.
이 같은 불화는 1년 뒤 불어권 건축사를 중심으로 기획된 제1회 CIAM(근대건축국제회의)에서 독어권 건축사들의 분열로 이어져 초기 응집력을 잃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실 헤링은 이 같은 국제적 건축사 모임을 1년 전 먼저 제안했지만 미스와의 갈등으로 인해 그것마저 사장되어 버렸다. 건축적 이견으로 시작해서 행정적인 문제까지 번져 버렸지만 건축적 갈등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네덜란드 근대건축운동인 데스타일(De Stijl)과 벤딩헨파(Wendingen)의 경우에서도 보듯 새로운 건축을 추구한다는 지향점 아래 건축적 논쟁이 존재한다는 것은 달리 보면 담론의 풍부함을 의미한다. 풍부한 담론과 논쟁은 건강한 긴장감과 에너지를 발산해서 또 다른 담론의 생성을 유도한다.

비록 국제적 전람회를 표방했지만 참여건축사 16명 중 독어권 건축사가 14명(네덜란드2명, 오스트리아 1명 포함)이었다(그림 4).
따라서 이 행사는 표현주의라는 독어권의 예술이념 아래 미스를 중심으로 순수를 표방한 이성주의자들과 헤링을 중심으로 유기적태도를 지향한 기능주의자들이 앞에서 언급 된 4가지의 건축적 이슈들에 각각 다르게 반응한 결과들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그야말로 아직 정치적 때가 묻지 않은 독일 근대건축담론의 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사가 어찌 정치, 권력과 떨어질 수 있었겠는가. 이 사건에 자극 받은 불어권 건축사들의 주도로 1928년 스위스에서 건축사 국제회의가 열리게 된다. 물론 이 자리엔 1927년 전람회에 참가한 데르 링의 건축사들과 헤링이 초청 받아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다양성을 전제로 하지 않았던 이회의의 최초 발의자 르 꼬르뷔지에와 지그프리트 기디온(Sigfried Giedion, 1888-1968)은 주도면밀하게 담론의 단순화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미스의 태도를 견제했던 움직임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약해졌고, 급기야 1933년 아테네 헌장을 발표하며 이성주의자들은 상징적승리를 선언했다. 자국의 건축적 역량을 유럽에 선보이려 시작했던 이 전시는 또 다른 움직임을 태동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독일의 근대건축운동을 분열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다.
국제주의건축사들의 공공의 적이었을까? 르 꼬르뷔지에는 기디온에게 청어를 그려보내며 헤링의 건축적 사망을 즐거워했다고 한다(그림 5/헤링은 발음상 독일어의 청어와 비슷).
출처
인류 최초의 주택전람회, 건축문화신문, 2013년 9월 1일, 제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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