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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설

[시론] 차를 부서도 되는 건축사
2018-07-25 09:51:16  |  아키포털 

 

※ 본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이미지이며, 뉴스 내용과 무관합니다.

 

 

필자가 유학하고 살았던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는 벤츠 자동차와 스마트 교통시스템으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하지만 분지에 있다 보니 교통체증이 상당히 심한 지역 중 하나이다  

 

어느 날, 한 달 이상이나 지체된 자동차 검사필증을 받으러 검사소로 부랴부랴 가다 접촉사고를 낸 적이 있다. 당시에 교통체증이 있어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중 물건 하나를 발 앞에 떨어뜨리게 되었다. 이를 도로 줍는 순간 약간의 충격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가속기를 잘못 밟아 앞에 있는 자동차를 추돌한 것이다. 받힌 차는 일본의 모 브랜드 스포츠카였는데, 출고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신차였다.  

 

얼핏 살펴보니 범퍼가 탈락할 정도로 많이 망가져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의구심이 들었다. 내 차가 아무리 튼튼한 벤츠라도 불과 시속 30km 이하의 속도로 살짝 받았을 뿐인데 이렇게 많이 망가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대뜸 원래 찌그러져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그 순간 아차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경찰이 오게 되면 사고는 물론이고 검사필증을 한 달 이상이나 받지 않은 책임도 물을 것이 뻔했다. 나는 당황하여 모두 내 책임으로 할 터이니 경찰에게 전화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외국인인 내가 더 미덥지 않았는지 굽히지 않았다 

 

다급한 나머지 내 신분을 밝혀 믿음을 주기 위해 명함을 건네어 주었다. 이를 살펴본 그는 약간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당신이 건축사냐고 물어왔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는 손짓으로 도면을 그리는 시늉을 하면서 정말 그러냐고 재차 확인했다.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그는 대뜸 과실을 인정하는 서명을 하면 보내 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사건이 마무리 된 뒤 안도의 숨을 지었고 건축사 직업을 가진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해외에서는 건축사가 이처럼 존중과 존경을 받는 대상이라는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한편 우리는 이러하지 못한 국내 상황에 대해서는 왕왕히 볼멘소리를 내기도 한다. 사실 건축사를 요구하는 도면이나 그려주고 인·허가 업무나 해결해 주는 단순한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제법 있다. 공동주택을 설계하는 경우에는 더 심하여서 대형 건설사들이 자기의 고유한 브랜드를 미리 정해 놓고 원하는 대로만 그려주기를 주문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설계대가는 당연히 열악하며, 건축사 고유의 창의성과 독창성이 설계에서 아예 실종되는 등 안타까운 현실이다. 


하지만 이를 모두 남 탓으로 돌리기에는 건축하는 우리도 많은 성찰을 해보아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제법 좋아지긴 했지만 이전에는 문자 그대로 허가방(?)이 많이 있었다. 또한 전문직이면서도 사회의 지도적 역할을 하는 데에 상당히 미진했던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이처럼 스스로 위상을 찾지 못하다보니 우리가 하는 건축을 감독하기 위해 건축위원회 외에도 구조, 경관, 디자인, 도시, 심지어 교통 분야 등의 불필요해 보이는 심의절차도 줄지어 생겨나게 되었다. 


선진국에서 건축사가 존중을 받는 데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은 전문직이다 보니 매우 어려운 공부를 해내야만 한다. 또한 졸업 후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역할도 잘 해낸다. 잘 알려진 것처럼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이 1980년대에 달성한 경제 회생에는 건축사들의 창의적 활약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는 건축사들도 즐비하다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는 독일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Bruno Taut, 18801938)이다. 1차 세계대전에 패한 후 독일에는 서민들을 위한 주택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이에 그는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 1883-1969), 마르틴 바그너(Martin Wagner, 1885-1957) 등과 함께 고전적 모더니즘 건축그룹을 만들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서민 공공주택(베를린 모더니즘 주택 단지, Berlin Modernism Housing Estates)을 건설하였다. 이 주택들은 공공이 아닌 건축가의 노력으로 저비용 고품격으로 지어졌으며, 그 사회 및 건축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우리 건축사들도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가는 더 존경받는 전문 직업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순박한 꿈일까? 

 

 

ab최만진 회장 l 대한건축학회 부산·울산·경남지회,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출처 : 건축사신문 http://www.archinews.net/?doc=news/read.htm&ns_id=1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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