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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사설

[칼럼] [기획] 건축사는 ‘봉’이 아니다
2018-09-04 10:23:02  |  아키포털 

건축사가 살아야 도시도 행복할 수 있다 (2)  

  

김정관 건축사 l 도반 건축사사무소

 

 

※ 본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이미지이며, 뉴스 내용과 무관합니다. 

 

 

 

團生散死,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이 말은 이순신 장군께서 명량해전을 앞두고 하신 말씀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힘들지 않은 분야가 있을까마는 우리 건축사는 국가자격 전문인으로서의 정체성마저 위협받고 있다. 많은 건축사가 직원을 두고 사무소를 유지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건축사라는 직업 자체의 존폐를 고민하는 처지에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심정으로 버티고 있다.

 

건축사는 봉인가? 

 

입찰이든 설계경기든, 교육청이나 관공서 발주 프로젝트도 설계대가에 비해 업무량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건축사 개인이 개선을 요구하거나 항의를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져도 속만 끓이고 있을 뿐이다.  

 

민간 설계는 어떤가? 요즘 설계 건이 거의 다 전문시행사로부터 나오다보니 분양 이익에 급급한 설계대가로 건축사를 흔들고 있고, 행정처리에 필요한 기본도면만 작업하면 알아서 시공을 하고 준공도면으로 뒷수습을 하는 실정이지 않은가? 박리다매로 업무에 시달리다보면 이윤은 고사하고 외주비와 부과되는 세금 맞추기도 급급한데, 평당 단가로 호가되는 설계비는 언제적 기준에 목을 매고 있는가? 설계비는 주는 대로 받고 일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건축사인가?  

 

직원의 고용을 유지할 수 없어서 외주처리로 업무를 진행하다보니 설계의 질은 보장할 수 없다. 건축행정에 있어서는 각종 심의절차와 각 영역의 전문기술자 협력이 갈수록 늘어나니 건축사의 고유 업무는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설계비 총액에서 업무 수행에 필요한 외주비로 소위 차포를 떼고 나면 졸만 남은 금액으로 무거운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건축허가나 준공서류에서 책임을 지는 날인은 건축사가 한다. 그런데도 그 대가는 책임만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이쯤 되면 건축사가 봉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건축사는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아키텍트(Architect), 건축사라는 용어의 정의를 살펴보자. Architecture의 어원을 살펴보면, Arch-라는 접두사는 arche(근원, 시초, 시작)에서 온 것이고, -tekton의 어원은 techne(기술)에서 온 것이라 한다. 즉 건축사, Architect는 근원의 기술을 행하는 자이다.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하고 Architect에게 사람이 사는 도시를 창조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사회는 우리 건축사를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으로 보고 있을까? 우리 건축사의 설계로 우리가 사는 세상인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지 않는가? 조물주가 지은 세상이 부족함이 없는 자연이라면, 우리가 지은 도시가 그렇지 못하다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하는 것일까?  

 

선진국일수록 건축을 문화나 예술로 정의하고 그 가치를 한 차원 높여서 평가하고 있다. 한 도시의 문화를 평가하고 그 도시가 얼마나 행복한지 따져보는 기준은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독재자가 만든 도시는 위압적일 수밖에 없고 급조된 신도시는 상술에 찌든 분위기를 벗어날 수가 없다. 오래된 도시를 여행해보면 고건축물이 소중하게 간직되고 있는 도시에서 우리는 행복해진다. 욕심으로 만들어진 용적률 위주의 도시에서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떤 건축사도 사람들이 불행하게 살 건축물을 설계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건축사가 근원의 기술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건축사는 시들어가고 있다.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건축문화 창달이라며 건축사는 왜 홀대 받고 있나? 

 

계약서에 있는 갑을의 관계처럼 건축사는 건축주에게 종속되어야 할까? 건축사는 건축주가 집을 지으려는 목적에 부합하도록 최선을 다해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건축사의 업무는 건축주의 사익(私益)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도시의 공공성(公共性)과 사용자의 공동성(公同性)도 함께 만족시켜야 하는 공인(公人)의 입장에 서야 할 일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건축사의 업무는 건축사법에 의해 보호되지만 건축법과 관련법의 테두리 안이라는 한정된 자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건축사가 건축주의 이익에만 치중하게 될 때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공익(公益)을 추구하는 공인으로서의 임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건축사가 건축주에게 이라는 처지에 묶여 공인의 입장에서 공익을 위해 애를 쓰는 건 불가능하다. 공인으로서 공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사회가 보장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  

 

건축사는 건축물과 도시의 환경을 쾌적하게 하면서 시민들의 주거 생활의 안녕을 책임지는 전문가이다. 그런데, 건축사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건축설계과정의 실제 작업보다 행정 처리가 더 힘들게 여겨질 때가 많다. 수십 년의 경력을 가진 건축사가 초임 공무원의 미숙한 행정 처리에 머리를 조아리기도 하고, 또 심의라는 옥상옥의 행정 절차에서는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던지는 비전공자인 심의위원의 개인 의견 앞에 전문가가 소신을 굽혀야 할 때도 많다. 건축물에 관한한 공인 전문가인 건축사가 건축 행정 담당에게 도면 검토를 받고, 각종 심의에서는 비전문가에게 설계 의도를 수정 요구받는다니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건축허가서와 착공서류에 건축주 외에는 설계자와 감리자로서 건축사만 기재되어 있다. 이는 건축관계자로서 건축주를 대리하는 책임자로 건축사에게 법적인 권한과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건축사에게 책임은 지우면서 권한은 공무원과 심의위원에게 주어져 있는 것일까? 건축문화 창달이 국가의 경쟁력이라고 내세우면서 정작 그 막중한 일의 중심에 서야 할 건축사는 왜 국가가 홀대하는지 묻고 싶다.

     

  

이제 협회를 중심으로 건축사의 위상을 찾자 

 

국가에서 법으로 건축사의 자격과 할 일을 정해 놓았다. 건축물에 관한 재난이나 건축법의 시행 관리에서 허점이 생기면 그 책임을 건축사에게 지운다. 공무원이 해야 할 업무의 일부를 건축사에게 위임하고 문제가 있을 시 책임에 대한 처벌도 받게 되어 있다. 그렇지만 업무 수행 대가가 책임질 만한 수준인지 우리 건축사들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날이 갈수록 건축물이 초고층화, 대규모화 되어가니 건축물로 인한 각종 도시 재난이 우려되고 있다. 건축물이 지어지고 난 이후에 생기는 문제는 이미 사후약방문일지도 모른다. 건축사가 수행해야 할 설계 과정에 집중할 수 있어야만 사용승인 후의 제반 문제가 사전에 방지될 수 있다. 복잡한 행정절차와 각종 심의는 설계 작업에 집중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전문가가 자신의 작업에 집중하기보다 행정절차의 요식이나 심의도서를 꾸미는데 적지 않은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고 있다. 

 

건축사라는 전문가의 위치와 우리 업역의 전문성을 침해하는 월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할 것이다. 절대수가 모자라는 협력업체의 작업 대가가 높다고 푸념하기 보다는 우리의 업무 대가를 현실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건축사의 위상을 재정립하는 건 우리 스스로 ‘10급 공무원이라는 자조적인 의식부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대한건축사협회가 해야 할 일, 지역건축사회를 중심으로 우리 건축사들이 어떤 일을 도모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겠다.  

 

협회를 중심으로 건축물에 관한한 최고의 전문가로서 위상을 정립하자. 건축사가 더 이상 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할 것이다.

 

 

 

출처 : 건축사신문 http://www.archinews.net/?doc=news/read.htm&ns_id=1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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