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설
건축 서비스? 뭐지요 이건?
2014-11-18 09:43:22 | 아키포털
건축 서비스? 뭐지요 이건?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우군이 될지 적군이 될지에 따라
건축이나 건축사의 위상이 커지든가 작아질 터이니
우선은 그 추이를 두고 볼 수밖에 없다.
건축 혹은 건축사와 관련된 어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아키텍톤(Architekton)’과 ‘오이코도모스(Oikodomos)’가 그것이다. 아키텍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듯이 모든 기술(Tectonics)의 으뜸(arche)으로서 헤루도투스의 말 대로 대형 수로나 신전 혹은 댐 같은 것을 건설하고 감독하는 ‘최고의 기술자(General manager)’를 뜻하는 말이다. ‘오이코도모스’라는 단어는 어떤 도시나 사회의 집이나 건물을 짓는 일을 나타내는 ‘오이코도메(Oikodome)’라는 그리스어가 그 어원으로 집을 짓는 사람을 뜻하고 있다. 이른바 ‘작은 의미의 건축사’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단지 집을 짓는 기술자만을 뜻하지는 않은 듯하다. <공자와 예수에게 길을 묻다>(이명권,2008)에 따르면, ‘오이코도메’라는 단어는 집이나 가족 및 종족을 뜻하는 오이코스(Oikos)에서 기인한 것으로 이것으로부터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단어와 ‘건축하다’ 혹은 ‘덕(德)을 세우다’라는 뜻의 ‘오이코도메오(Oikodomeo)’라는 동사가 파생 되었다 한다. ‘건축’이라는 행위가 사람들이 사는 집을 지으면서도 덕을 세우는 건축(建築)이자 건덕(建德)임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단어들이 존재했기 때문일까. 고대나 그리스, 로마 혹은 중세에 이르기까지 아키텍톤과 오이코모도스가 병존해 왔다. 이집트 제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부속 건물을 지휘 감독한 재상 임호텝은 신격화된 아키텍톤의 표상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리스의 테오도로스와 익티노스, 칼리크라테스, 므네시클레스, 헤르모게네스를 비롯하여 로마 시대의 비트루비우스나 세베루스, 켈레르, 라비리우스 그리고 아폴로도로스 등은 여전히 당대의 최고의 아키텍톤이자 오이코도모스로 아직까지 우리 건축인들 가슴 속에 자리하고 있다. 신성한 종교 앞에 언감생심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꺼려했던 중세조차도 피에르 드 몽트루나 예벨 등 소수의 건축인들은 여전히 아키텍톤이자 오이코도모스였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국가적인 거대 사업이나 신전 및 교회 등 굵직한 기술이 요구되는 일을 처리하면서 사회를 ‘건축’하고 동시에 사회적 ‘덕(德)’을 실현하였던 셈이다.
그러나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변하게 된다. 바자리나 알베르티 등이 ‘건축사’라는 존재를 갑자기 독립된 개성적인 존재로 부각시키면서 건축사는 단순한 직공이나 기술자와는 다른 예술적 천부 재능을 지닌 예술가로 위치 설정되었으며, 그 결과 설계자와 시공자의 분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왕실이나 패트론의 지원을 받은 그들은 어찌 보면 아키텍톤도 아니고 오이코모도스도 아닌 이른바 특권적인 사회적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의 영광은 길지 않았다. 근대 초기 귀족계급이 쇠퇴하거나 몰락함에 따라 그들도 유력한 후원자를 잃게 되었으며 군사 기술 및 산업혁명의 발전과 함께 등장한 엔지니어의 진출에 의해 르네상스 이래의 예술가적 건축사는 큰 직업적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게다가 근대 이후의 신흥 브루조아와 관료계층은 근대정신에 입각한 실리와 기능 위주의 건축을 원하기 시작하였으며 자연스럽게 건축사들은 새로운 패트론의 취향에 따라 합리와 기능이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건축사의 위상이 변한건지 작아진건지 애매하기는 하지만 역시 예전만큼은 못한 것은 분명하였다.
이제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발효됐다. 누가 뭐래도 건축사들에게는 그야말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현안이 되고 말았다. 그동안 본의 아니게 건설이나 건축 영역에서 소외되고 있던 건축 서비스 관련산업에 대한 위치 설정이나 지원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갑고 축하할 만한 일이기는 하면서도 이렇게 법조문에까지 의지해야 하는 우리네 실정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서비스’라는 단어도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건축가를 아키텍톤이나 오이코도모스로 되돌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이제 건축에 ‘서비스’라는 단어가 붙어 버렸다. 문화도 아니고 사회적 덕(德)도 아닌 ‘서비스’라 한다. 이 단어가 건축사의 발목을 잡을지 날개를 달아 줄지는 모르는 일이나 이 법이 우군이 될지 적군이 될지에 따라 건축이나 건축사의 위상이 커지던가 작아질 터이니 우선은 그 추이를 두고 볼 수밖에 없다.
김영훈 kymyh@daejin.ac.kr
대진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건축 서비스? 뭐지요 이건?, 건축문화신문, 2014년 7월 1일,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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