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캘리포니아 라호이아 해안에 자리한 살크 생물학 연구소는 루이스 칸이 설계해 1965년 완공했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너스 소크의 의뢰로 지어졌으며, 6층 규모의 연구동 두 채가 좌우 대칭으로 마주 서고 그 사이에 트래버틴을 깐 약 90미터 길이의 중정이 놓인다. 중정에는 나무 한 그루 심지 않고 가느다란 수로 하나만 태평양 쪽으로 뻗어 있는데, 해질 무렵 이 물길과 수평선이 겹치면서 중정 전체가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인다. 벽은 거푸집 자국을 그대로 남긴 노출 콘크리트이고, 개인 서재 창에는 도장이나 방부 처리를 하지 않은 티크 목재를 썼다. 연구소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침묵하는 광장 같은 이 건물은, 20세기 후반 건축이 도달한 ‘기념성(monumentality)’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 비어 있는 중정, 그리고 바라간의 조언
중정이 비어 있는 데는 사연이 있다. 루이스 칸은 원래 이곳에 정원을 만들 생각이었는데, 멕시코 건축가 루이스 바라간을 불러 의견을 물었더니 나무도 풀도 심지 말고 돌로 덮은 광장으로 두라고 했다. “여기에 나무나 풀 한 포기도 두지 마십시오. 이곳을 광장으로 만들면 당신은 하나의 파사드, 곧 하늘을 향한 파사드를 얻게 됩니다.” 칸은 그 조언을 받아들였고, 지금 이 중정이 주는 인상은 대부분 그 비움에서 나온다. 바닥의 트래버틴과 하늘, 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는 한 줄기 물만 남기자, 건물의 정면은 벽이 아니라 하늘이 됐다.
■ 과학자를 위한 수도원
조너스 소크가 칸에게 건넨 요구는 특이했다. 넓은 실험실뿐 아니라 “피카소를 초대해도 부끄럽지 않을 공간”을 지어 달라는 것이었다. 과학 연구소이면서 동시에 정신적 깊이를 지닌 장소를 원한 것이다. 칸은 이 요구를 실험동과 서재, 그리고 비운 중정이라는 세 요소로 풀었다. 실험동은 효율을, 개인 서재는 사색을, 중정은 그 둘을 잇는 침묵을 맡는다. 결과적으로 살크는 연구 시설이라기보다 ‘과학자를 위한 수도원’이라 불리게 됐다. 기능만 채운 건물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정신 상태까지 설계 대상으로 삼은 드문 사례다.
■ served와 servant: 실험실을 위해 설비층을 통째로 내주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살크에서 가장 중요한 발상은 served space(사용되는 공간)와 servant space(시중드는 공간)의 분리다. 칸은 연구층 사이마다 사람이 들어가 걸어 다닐 수 있는 설비층을 통째로 한 층씩 끼워 넣었다. 이 설비층은 약 2.7미터(9피트) 깊이의 비렌딜(Vierendeel) 트러스로 짜여, 트러스 자체가 큰 스팬을 건너뛰면서 그 속을 배관·덕트·배선이 지나간다.
| 구분 | served space | servant space |
|---|---|---|
| 용도 | 실험실(사람이 연구하는 층) | 설비층(배관·덕트·배선) |
| 구조 | 기둥 없는 무주 공간 | 약 2.7m 깊이 비렌딜 트러스 |
| 이점 | 장비 배치·칸막이 자유 | 실험 중단 없이 설비 교체·증설 |
실험실은 장비가 바뀔 때마다 배관과 덕트를 새로 깔아야 하는데, 위·아래 설비층에서 작업하면 실험을 멈추지 않아도 된다. 준공 6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건물이 현역 연구소로 쓰이는 결정적 이유가 여기 있다. 초기 공사비는 늘지만 운영 단계에서 회수되는 설계다.

■ 세월에 좋아지는 재료를 골랐다
재료도 오래 버티도록 골랐다. 벽은 거푸집 자국을 그대로 남긴 노출 콘크리트인데, 배합에 화산재(포졸란)를 섞어 은은한 분홍빛이 돈다. 칸은 콘크리트가 굳은 뒤 어떤 후처리도 허용하지 않아, 재료 그 자체의 질감과 색이 마감이 되게 했다. 서재 창틀의 티크는 일부러 아무 처리도 하지 않아 바닷바람에 은회색으로 바래도록 뒀다. 칠이 벗겨지는 것이 아니라 색이 옮겨 가는 방식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인상이 깊어진다. 준공 직후보다 지금이 더 아름답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빛의 건축
칸에게 빛은 재료만큼 중요한 설계 요소였다. 서재는 연구동에서 45도 비틀어 배치해 각 방이 태평양과 중정을 동시에 향하게 했고, 좁고 깊은 창으로 들어온 빛이 콘크리트 면을 타고 흐르며 하루의 시간을 벽에 새긴다. 중정의 수로는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빛을 반사해 건물 안쪽까지 끌어들이는 장치이기도 하다. 대칭·축·비움·빛이 한데 모여, 종교 건축이 아닌 연구 시설에 기념비적 고요함을 부여했다.
■ 왜 ‘기념성’인가
살크가 지어질 무렵, 근대 건축은 유리 상자 같은 균질한 사무소 건물로 굳어 가고 있었다. 칸은 그 흐름에 맞서 건축이 다시 무게와 영속성을 가져야 한다고 봤다. 그가 말한 기념성은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구조·빛이 오래 버티며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가의 문제였다. 살크에서 대칭 축, 두꺼운 콘크리트, 비운 중정, 좁고 깊은 창은 모두 그 무게를 만들기 위한 장치다. 유행이 지나도 낡지 않는 이유, 준공 60년이 지나도 순례하듯 찾아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효율만 좇지 않고 ‘오래 남을 것’을 먼저 물었기 때문이다.
■ 이런 분께 도움이 됩니다
- 연구시설·병원·실험동을 설계하는 실무자 — 설비층을 층 사이에 통째로 끼우는 방식은 초기 공사비가 늘지만 장비 교체 주기가 짧은 용도에서는 운영비로 회수된다. 유지관리 동선을 설계 초기에 확보하는 전략의 원형이다.
- 건축을 배우는 학생 — 비움이 왜 강한지를 도면이 아니라 몸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건물이다. served/servant 개념과 바라간의 조언을 함께 알고 보면 중정의 폭·길이와 설비층의 존재가 다르게 읽힌다.
- 집을 짓는 건축주 — 세월이 지나며 나빠지는 재료와 좋아지는 재료가 있다. 무처리 티크와 노출 콘크리트는 후자에 가깝다. 준공 직후 사진만 보고 마감재를 고르면 몇 년 뒤 후회하기 쉽다.
■ 참고
연구 시설이라 자유 관람이 아니라 건축 가이드 투어를 미리 예약해야 하고 요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다. 춘분·추분 무렵에는 해가 중정의 수로 선상으로 떨어져 사진이 가장 극적으로 나오는데, 그 시기 예약은 일찍 찬다.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에서 투어 일정과 예약 방법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중정은 투어 없이도 정해진 시간에 개방되는 경우가 있으니, 물길과 수평선이 겹치는 장면만 보려는 방문객은 개방 시간을 따로 확인하면 헛걸음을 줄일 수 있다. 인근에는 라호이아 해안 산책로가 이어져, 건물을 본 뒤 태평양 쪽으로 시선을 이어 걷기에도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