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하나의 경사로로 이어지는 시애틀 중앙도서관

유리 강철 다이아그리드 외피의 현대 도서관

시애틀 중앙도서관은 OMA의 렘 콜하스와 조슈아 프린스라무스가 시애틀의 LMN 아키텍츠와 함께 설계해 2004년 5월 23일 개관한 11층 규모의 공공도서관이다. 연면적은 약 3만 4천 제곱미터(약 36만 제곱피트)에 이른다. 바깥에서 보면 유리와 강철 격자로 짜인 표피가 층마다 다른 각도로 접히고 물러나 있어,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건물 윤곽이 달라 보인다. 내부에서 가장 특징적인 곳은 북 스파이럴(Books Spiral)로, 서가를 층으로 끊지 않고 듀이십진분류 순서를 따라 완만한 경사로 하나에 연속으로 배열했다. 이용자는 층을 갈아타거나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고, 걸어 올라가는 것만으로 000번대에서 900번대까지 지나가게 된다. 개관한 해에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건축물’에 올랐다.

■ 프로그램을 쌓아 만든 건물

이 도서관은 형태를 먼저 정하고 기능을 채운 것이 아니라, 기능(프로그램)의 덩어리를 먼저 정리한 뒤 그것을 쌓아 올려 형태를 얻었다. OMA는 도서관의 기능을 성격이 안정적인 다섯 덩어리와, 그 사이를 채우는 유동적인 네 덩어리로 나눴다. 안정적인 덩어리는 크기가 잘 변하지 않으므로 견고한 ‘플랫폼’으로 만들고, 그 사이 빈 층에 사람들이 머무는 유동적 공간을 배치했다.

안정적 플랫폼(5) 유동적 공간(4)
주차장 어린이 공간
직원 업무 거실(Living Room)
회의·모임 믹싱 챔버(Mixing Chamber)
북 스파이럴(서가) 리딩룸(열람실)
운영 본부(HQ)

이렇게 크기가 다른 상자들이 서로 어긋나게 쌓이면서 층마다 평면 위치가 밀리고, 그 어긋남이 바로 바깥에서 보이는 접힌 윤곽이 됐다. 프로그램 다이어그램이 그대로 건물 단면이 된 보기 드문 사례다.

■ 북 스파이럴: 오래된 골칫거리를 형태로 풀다

북 스파이럴이 인상적인 이유는 모양이 아니라 도서관이 오래 안고 있던 문제를 형태로 풀었다는 데 있다. 보통 도서관은 층마다 분류 구간이 끊긴다. 한 분야의 책이 늘어나면 그 층이 넘치고, 뒤 번호 책들을 아래층으로 밀어내는 ‘대이동’이 벌어진다. 몇 해에 한 번씩 도서관 전체가 뒤집히는 일이 생긴다. 시애틀은 서가를 층으로 자르지 않고 6층에서 9층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로 하나에 000번대부터 900번대까지 끊김 없이 늘어놓았다. 책이 늘면 그 지점부터 뒤로 밀면 그만이고 분류 순서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경사로는 휠체어도 다닐 수 있게 설계됐다.

항목 수치
개관 층 6~9층 연속 경사로
서가(책장) 수 약 6,233개
개관 시 장서 약 78만 권
수용 가능 장서 서가 증설 없이 약 145만 권까지

개관 20년이 지난 지금, 이 방식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검증된 결과다. 개관 시 78만 권을 담고도 서가를 더 놓지 않고 145만 권까지 받아낼 여유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20년 뒤를 기준으로 배치를 짠다’는 계획 원칙이 그대로 구현됐다.

내부 연속 경사로 서가가 완만하게 이어지는 도서관 내부

■ 믹싱 챔버와 거실 — 사람이 머무는 사이 공간

플랫폼 사이의 유동적 공간에는 이 도서관의 성격이 응축돼 있다. 3층의 믹싱 챔버는 사서와 이용자가 가장 밀도 높게 만나는 곳으로, 정보를 찾는 사람과 도와주는 전문가가 뒤섞이는 ‘정보 거래소’로 구상됐다. 검색이 온라인으로 옮겨 간 시대에 도서관의 사람-대-사람 기능을 한 층에 집중시킨 발상이다. 5번가 쪽 3층의 거실(Living Room)은 천장 높이가 약 15미터에 이르는 큰 유리 홀로, 책을 빌리지 않아도 도시를 바라보며 머물 수 있는 도시의 응접실 역할을 한다.

■ 다이아그리드 외피

바깥을 감싼 유리·강철 격자(다이아그리드)는 접히고 물러난 상자들을 하나의 표피로 묶어 준다. 사선 격자는 구조적으로 횡력에 강해 지진이 잦은 시애틀에 유리하고, 동시에 각기 다른 성격의 내부 층들을 ‘하나의 담요’처럼 덮어 통일감을 준다.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이 표피지만, 건물이 오래 인용되는 이유는 안쪽의 북 스파이럴에 있다.

■ 검색의 시대에 도서관은 왜 필요한가

2004년은 인터넷 검색이 이미 정보 습득의 중심으로 옮겨 가던 때다. 콜하스는 도서관이 ‘책 창고’로 남으면 사라질 것이라 보고, 도서관을 정보의 종류가 뒤섞이는 사회적 공간으로 재정의했다. 책은 북 스파이럴에 효율적으로 쌓아 두되, 사람이 머무는 거실·믹싱 챔버·리딩룸을 건물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종이책과 디지털, 혼자 있음과 함께 있음이 한 건물 안에서 층을 바꿔 가며 공존한다. 20년이 지나 공공도서관이 ‘책을 빌리는 곳’을 넘어 ‘머무는 곳’으로 바뀐 흐름을 떠올리면, 이 건물이 던진 질문이 얼마나 빨랐는지 알 수 있다.

■ 이런 분께 도움이 됩니다

  • 공공건축 담당자·설계자 — 도서관 계획에서 서가 증가율은 늘 과소평가된다. 준공 시점이 아니라 20년 뒤를 기준으로 배치를 짜야 한다는 것을 이 건물이 수치로 보여준다.
  • 건축을 배우는 학생 — 프로그램 다이어그램이 그대로 단면이 된 사례다. OMA가 공개한 블록 다이어그램과 실제 단면도를 나란히 놓고 보면 개념이 어떻게 형태로 살아남았는지 읽힌다.
  • 시애틀 여행자 — 공공도서관이라 입장료가 없다. 10층 리딩룸에서 유리 격자 너머로 도심이 보이는데, 관광지가 아니라 시민들이 실제로 쓰는 공간이라 조용히 다녀야 한다.

■ 참고

바깥 표피는 서 있는 위치에 따라 윤곽이 크게 달라지므로 한 바퀴 돌아보길 권한다. 내부는 층마다 바닥 색과 조명이 달라 사진이 잘 나오는데, 북 스파이럴 구간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걷는 편이 경사를 느끼기에 좋다. 개관 시각과 층별 운영 시간은 도서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붉은 복도로 유명한 4층과 3층 믹싱 챔버, 그리고 6~9층 북 스파이럴을 차례로 지나면 프로그램이 어떻게 층으로 쌓였는지를 몸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아래층에서 위로 한 번, 위에서 아래로 한 번 훑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