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데이트 2026년 10월 13일읽는 시간 약 4분

필로티 위로 수평 띠창이 이어지는 모더니즘 건물
AI로 만든 예시 이미지

모더니즘 건축, 곧 근대 건축은 산업화로 달라진 사회에 맞는 건축을 찾겠다며 19세기까지 이어진 역사 양식의 모방을 거부한 흐름이다. 제1차 세계대전 뒤 유럽에서 본격화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전 세계 도시로 퍼져 20세기 건축의 기본 문법이 되었다. 발터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유럽 쪽 중심인물이라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미국에서 독자적인 근대 건축의 길을 열었다.

장식을 걷어 낸 것은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였다

19세기까지 은행은 그리스 신전의 기둥을, 기차역은 고딕 성당의 첨탑을 빌려 입었다. 그런데 철골과 판유리, 철근콘크리트가 등장하고 도시로 사람이 몰리자 필요한 건물의 양과 속도가 달라졌다. 새 재료는 두꺼운 벽 없이도 하중을 받을 수 있었고, 공장에서 만든 규격 부재를 조립하는 방식과도 잘 맞았다. 기둥이 하중을 맡으면 벽은 칸막이가 되고, 창은 원하는 만큼 넓힐 수 있다. 모더니즘이 표면 장식을 걷어 낸 것은 이 구조 논리를 따라가다 도달한 결과였지, 장식이 싫어서 시작한 운동은 아니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정리한 다섯 가지 원칙

르 코르뷔지에는 1927년 슈투트가르트 바이센호프 주택 전시 무렵 새 건축의 요점을 다섯 가지로 발표했다. 모두 기둥과 슬래브만으로 서는 철근콘크리트 골조를 전제로 하며, 그 바탕은 그가 1914년 구상한 도미노 시스템, 곧 기둥과 바닥판과 계단만으로 이뤄진 뼈대였다.

  1. 필로티: 건물을 기둥으로 들어 올려 1층을 비운다. 땅은 통행과 정원으로 돌아간다.
  2. 자유로운 평면: 내부 벽이 하중을 받지 않으니 층마다 칸막이를 달리 둘 수 있다.
  3. 자유로운 입면: 외벽도 구조에서 풀려나 기둥 위치와 상관없이 입면을 구성한다.
  4. 수평 띠창: 벽이 하중을 받지 않으므로 창을 가로로 길게 이어 방 전체에 고른 빛을 들인다.
  5. 옥상정원: 평지붕을 정원으로 써서 건물이 차지한 대지 면적을 되돌려 준다.

1931년 파리 근교 푸아시에 완공된 빌라 사보아는 이 다섯 가지가 한 건물에 고스란히 모인 사례로 꼽힌다.

대표 건물로 비교해 보는 모더니즘

건물 설계자 완공 눈여겨볼 점
바우하우스 데사우 교사 발터 그로피우스 1926 공방동 전면을 덮은 유리 커튼월, 기능별로 나눈 동의 배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미스 반 데어 로에, 릴리 라이히 1929 가는 강철 기둥이 받친 평지붕 아래 벽이 따로 서서 공간이 막힘없이 흐른다. 박람회 뒤 철거됐다가 1986년 제자리에 복원됐다
빌라 사보아 르 코르뷔지에, 피에르 잔느레 1931 필로티, 띠창, 옥상정원과 층을 잇는 경사로
낙수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1939(1935년 설계) 폭포 위로 내민 캔틸레버 테라스와 주변 암반으로 이어지는 수평선
시그램 빌딩 미스 반 데어 로에 1958 도로에서 물러나 광장을 내준 배치, 외벽을 따라 반복되는 수직 멀리언

미스와 라이트, 같은 시대의 다른 답

모더니즘 안에서도 방향은 하나가 아니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강철과 유리로 된 보편적인 공간을 추구했다. 기둥 간격을 일정하게 두고 칸막이를 최소화한 넓은 바닥은 어떤 용도로도 쓸 수 있고, 어느 도시에 세워도 같은 질서를 가진다. 반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물이 땅과 풍경에서 자라나야 한다는 유기적 건축을 주장했다. 낙수장이 폭포 위 암반에 테라스를 걸치고 그 지역의 돌로 벽을 쌓은 것은, 같은 시기 유럽 모더니스트들이 흰 벽과 평지붕으로 장소와 무관한 형태를 만든 것과 대조된다. 장식을 걷어 내고 새 구조 기술을 받아들였다는 점은 같지만, 보편과 장소 가운데 무엇을 앞세웠느냐가 달랐다.

획일화라는 비판과 그 반작용

193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헨리러셀 히치콕과 필립 존슨이 연 근대 건축전은 이 흐름에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역과 상관없이 어디서나 통하는 양식이라는 뜻이었고, 바로 그 점이 뒤에 약점으로 지목됐다. 모더니즘이 세계로 퍼지면서 같은 원칙이 기후도 역사도 다른 도시에 똑같이 적용됐다. 유리 상자형 사무소와 판상형 주거 단지가 어디서나 비슷한 얼굴로 섰고, 장소의 기억을 지웠다는 비판이 1960년대부터 커졌다. 로버트 벤투리가 1966년 모더니즘의 순수주의를 정면으로 문제 삼은 뒤 포스트모더니즘이 나왔고, 그 과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시 절제된 조형을 추구하는 흐름이 이어졌다. 건축 사조는 이렇게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반대쪽으로 되돌아가는 움직임을 되풀이해 왔다.

건물 앞에서 모더니즘을 알아보는 단서

  • 입면의 창 띠와 줄눈이 안쪽 기둥 간격과 맞아떨어지는지 본다. 맞는다면 외피가 구조 그리드를 드러내는 설계다.
  • 모서리에 기둥 대신 유리가 돌아가 있으면 기둥을 안으로 물린 것이다. 외벽이 하중에서 풀려났다는 표시다.
  • 1층이 기둥만 남기고 비어 있는지, 캐노피가 보행로에 그늘을 내주는지 살핀다.
  • 외벽 재료가 콘크리트, 유리, 강철을 그대로 드러내는지, 아니면 돌이나 벽돌을 붙여 옛 건물처럼 보이게 했는지 비교한다.
  • 평지붕 위에 옥상 테라스나 정원이 있는지, 난간이 수평선을 끊지 않게 처리됐는지 본다.
격자 창이 반복되는 흰 사무소 건물
격자 창이 반복되는 흰 사무소 건물 — AI로 만든 예시 이미지
기둥만 남기고 트인 콘크리트 실내
기둥만 남기고 트인 콘크리트 실내 — AI로 만든 예시 이미지

참고 문헌

자주 묻는 질문

모더니즘 건축은 왜 장식을 없앴나요?

장식이 싫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구조 논리를 따라간 결과입니다. 철골과 판유리, 철근콘크리트가 등장해 기둥이 하중을 맡으면서 벽은 칸막이가 되고 창은 원하는 만큼 넓힐 수 있게 됐고, 이 논리를 따라가다 표면 장식을 걷어 내게 됐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다섯 가지 원칙은 무엇인가요?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자유로운 입면, 수평 띠창, 옥상정원입니다. 1927년 슈투트가르트 바이센호프 주택 전시 무렵 발표했으며 모두 기둥과 슬래브만으로 서는 철근콘크리트 골조를 전제로 합니다. 1931년 완공된 빌라 사보아가 다섯 가지가 모인 사례로 꼽힙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라이트의 건축은 어떻게 다른가요?

보편과 장소 가운데 무엇을 앞세웠느냐가 다릅니다. 미스는 강철과 유리로 어느 도시에 세워도 같은 질서를 가지는 보편적인 공간을 추구했고, 라이트는 건물이 땅과 풍경에서 자라나야 한다는 유기적 건축을 주장했습니다. 장식을 걷어 내고 새 구조 기술을 받아들인 점은 같습니다.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왔나요?

1932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근대 건축전에서 나왔습니다. 헨리러셀 히치콕과 필립 존슨이 지역과 상관없이 어디서나 통하는 양식이라는 뜻으로 붙였는데, 바로 그 점이 뒤에 약점으로 지목돼 1960년대부터 장소의 기억을 지웠다는 비판이 커졌습니다.

같은 주제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