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포항 지진 이후 신축 건물의 “내진설계”라는 말은 익숙해졌지만, 뉴스에 종종 등장하는 면진과 제진은 여전히 헷갈립니다. 셋 다 지진에 대응하는 기술이라는 점은 같지만, 지진의 힘을 다루는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내진이 “버티는” 전략이라면, 면진과 제진은 각각 “피하는” 전략과 “삼키는” 전략에 가깝습니다.

내진, 면진, 제진 — 세 가지 다른 접근
내진구조는 철근콘크리트 전단벽이나 튼튼한 골조처럼 구조체 자체의 강도와 강성을 높여 지진력을 견디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반면 면진구조(Base Isolation)는 기초와 상부구조 사이에 지진력을 끊어내는 장치를 두어, 땅의 흔들림이 건물에 전달되는 양 자체를 줄입니다. 제진구조(Damping System)는 건물 안이나 골조 곳곳에 별도의 장치를 설치해 진동 에너지를 흡수·소산시킴으로써 건물의 흔들림을 줄이는 방식입니다. 흔히 내진성능은 내진 < 제진 < 면진 순으로 좋아지고, 비용도 같은 순서로 높아진다고 설명합니다.
면진구조 — 지반과 건물을 분리하다
면진구조의 핵심은 기초 상부에 설치하는 면진장치(베어링)입니다. 고무와 강판을 겹겹이 쌓은 적층고무받침이 대표적이며, 여기에 납이나 감쇠재를 추가해 에너지를 흡수하는 방식도 널리 쓰입니다. 지진이 발생하면 이 베어링이 수평 방향으로 유연하게 변형되면서 지반의 흔들림 주기와 건물의 고유주기를 분리시키고, 그 결과 상부 구조물에 전달되는 지진력이 크게 줄어듭니다. 검색을 통해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면진구조는 지진 진동을 대략 50~90퍼센트까지 줄일 수 있다고 설명되며, 병원·데이터센터·고급 주거시설·문화재 보호시설처럼 건물 자체의 붕괴 방지뿐 아니라 내부 장비와 기능을 지진 중에도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 시설에 특히 적합합니다. 다만 베어링과 별도의 기초 구조가 필요해 초기 공사비가 높고, 건물 하부에 수평 변위를 흡수할 공간(면진층)을 확보해야 하는 제약이 있습니다.

제진구조 — 건물 안에서 흔들림을 삼키다
제진구조는 지반과 건물을 분리하는 대신, 건물 자체의 거동을 이용해 진동을 줄입니다. 대표적인 방식이 동조질량감쇠기(TMD, Tuned Mass Damper)로, 건물 상층부에 무거운 질량체를 스프링이나 케이블로 매달아 건물의 흔들림과 반대 위상으로 움직이게 함으로써 진동 에너지를 상쇄합니다. 실제로 국내 초고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는 최상층부에 맴돌이 전류(와전류) 방식의 동조질량감쇠기 등 제진 장치를 설치해 바람과 지진에 의한 흔들림을 억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됩니다. 이 밖에도 액체의 관성을 이용하는 동조유체감쇠기(TLD), 건물 골조 곳곳에 분산 배치해 진동 에너지를 열로 소산시키는 오일댐퍼·점탄성댐퍼 등도 제진 장치로 쓰입니다. 제진구조는 면진구조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기존 건물에도 보강 적용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반의 흔들림 자체를 차단하지는 못하므로 저감 효과는 면진구조보다 제한적입니다.
국내 규정 — 언제 내진설계가 의무인가
건축법 제48조와 그 위임을 받은 건축법 시행령 제32조는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구조 안전 확인과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검토한 자료를 종합하면 층수 2층 이상(목구조는 3층 이상), 높이 13미터 이상 또는 처마높이 9미터 이상, 연면적 200제곱미터(목구조는 500제곱미터) 이상, 기둥과 기둥 사이 거리 10미터 이상인 건축물 등이 대상에 포함됩니다. 이때 적용하는 구체적인 기술기준이 국가건설기준 KDS 41 17 00(건축물 내진설계기준)입니다. 이 기준은 지진하중 산정 방법부터 구조부재·비구조요소의 내진설계, 그리고 면진·제진 장치를 적용하는 경우의 설계 방법까지 포괄적으로 규정합니다. 한편 지진·화산재해대책법은 개별 건축물의 설계 기준이라기보다 국가 차원의 지진 방재 체계, 기존 시설물의 내진보강 기본계획, 내진성능평가 등을 규율하는 법으로, 공공시설물의 내진보강을 5년 단위 계획으로 추진하도록 하는 근거가 됩니다.

어떤 건물에 어떤 방식을 선택하나
모든 건물에 면진·제진 장치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인 저층·중층 건물은 내진구조만으로 법정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면진구조는 지진 중에도 내부 기능이 멈추면 안 되는 병원 수술동, 데이터센터, 정밀 장비를 다루는 시설, 진동에 취약한 문화재 보호시설 등에서 우선 검토됩니다. 제진구조, 특히 TMD는 초고층 건물처럼 바람에 의한 상시 흔들림(진동 사용성)과 지진 흔들림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경우, 또는 기존 건물의 내진 성능을 구조 형태를 크게 바꾸지 않고 보강해야 하는 경우에 적합합니다. 설계 초기 단계에서 건물의 용도, 높이, 지반 조건, 내부에 들어갈 장비의 진동 민감도를 함께 검토해 세 방식 중 무엇을 조합할지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접근입니다.
면진 건물은 설계·유지관리도 달라진다
면진구조를 채택하면 구조 설계 이후의 실무도 달라집니다. 면진층에서 건물이 수평으로 수십 센티미터까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이 층을 지나는 전기·가스·급배수 배관과 승강기 케이블은 변위를 흡수할 수 있는 유연이음(플렉시블 조인트)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건물 외곽부와 인접 대지·인접 건물 사이에도 지진 시 움직일 공간(클리어런스)을 비워 둬야 하고, 이 틈을 마감하는 조인트 커버 역시 변위를 따라갈 수 있는 제품을 씁니다. 준공 이후에도 베어링의 열화나 손상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면진 성능이 설계값대로 유지되므로, 면진구조는 “설치하고 끝”이 아니라 건물 수명 내내 관리 대상이 되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우리 집 같은 저층 주택에도 면진·제진이 필요한가요?
대부분의 저층 주택은 내진구조만으로 법정 기준을 충족합니다. 면진·제진은 초기 투자비가 크므로 병원·데이터센터·초고층 건물처럼 지진 중에도 기능 유지가 중요하거나 진동 관리가 까다로운 건물에서 우선 검토되는 방식입니다.
Q. 면진구조면 지진 피해가 전혀 없나요?
아닙니다. 지진력이 크게 줄어들 뿐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으며, 베어링의 설계 변위 범위를 넘어서는 초대형 지진이나 관리 소홀로 성능이 저하된 경우에는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Q. 기존에 지은 건물도 면진·제진으로 보강할 수 있나요?
가능합니다. 기존 건물의 기초를 절단해 면진장치를 끼워 넣는 면진 리트로핏이나, 골조에 댐퍼를 추가하는 제진 보강 모두 실제로 쓰이는 내진 보강 방식이며, 건물의 용도·구조 형식에 따라 적합한 방식이 달라집니다.
정리
내진은 버티고, 면진은 지반의 흔들림을 아예 건물에 덜 전달되게 하며, 제진은 건물 스스로 흔들림 에너지를 소산시킵니다. 셋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건물의 용도와 예산, 지반 조건에 따라 조합해서 쓰는 서로 다른 도구입니다. 국내에서는 건축법 시행령이 정한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KDS 41 17 00 기준에 따른 내진설계가 의무화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면진·제진 장치를 추가로 채택합니다. 설계를 의뢰하거나 검토할 때는 “내진설계를 했다”는 말만으로 끝내지 말고, 어떤 방식을 어떤 기준으로 적용했는지까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식 참고 자료 및 적용 범위
이 글은 면진구조와 제진구조의 원리 차이, 그리고 국내 내진설계 의무화 기준을 이해하기 위한 참고용입니다. 실제 내진설계 의무 대상 여부와 적용 기준, 면진·제진 장치의 채택 여부는 건축물의 용도·규모·구조 형식과 관계전문가의 구조 검토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래 기준은 확인일 기준의 공식 원문입니다. 법령·고시·국가건설기준은 개정될 수 있으므로 실제 설계·시공 판단 전에는 최신 원문과 관계전문가 또는 관할 기관 안내를 다시 확인하세요.
확인일: 2026-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