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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가로질러 매설 중인 대구경 콘크리트 관로 공사 현장
AI로 생성한 이미지(실제 건물 사진 아님)

2026년 시공능력평가에서 대우건설은 9조 9,249억 원으로 5위에 올랐다. 1위 삼성물산(34조 8,785억 원), 2위 현대건설(18조 2,714억 원), 3위 GS건설(11조 668억 원), 4위 현대엔지니어링(11조 53억 원)에 이은 순위다.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 연속 지켜온 3위 자리를 GS건설에 내주고 두 계단 내려온 결과지만, 이 회사의 역사는 순위표 한 줄로 설명하기 어렵다. 대우건설은 1973년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주가 도급순위 604위의 영세업체였던 영진토건을 인수하며 시작됐다. 그해 8월 1일 상호를 대우건설 주식회사로 바꾸고, 이듬해에는 다시 대우개발로 이름을 고쳤다. 국내 건설사 대부분이 국내 발주 물량에 의존하던 시절, 대우는 처음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 1976년 해외건설업 면허를 딴 뒤 같은 해 남미 에콰도르에서 1,800만 달러 규모의 키토시 도로포장공사를 수주하며 첫 해외 공사를 따냈고, 이듬해인 1977년에는 수단에 영빈관을 지어 국내 건설사로는 처음 아프리카 땅을 밟았다. 그리고 1978년, 국내 업체로는 처음으로 리비아에 진출했다. 이후 발전·석유화학·토목·건축에 걸쳐 리비아에서만 163여 건, 누적 110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행했고 트리폴리에서는 항만과 도로, 1996년 준공한 트리폴리 중앙병원까지 지었다. 2000년대 들어서도 벵가지 북부 발전소(2003년), 미수라타·벵가지 복합화력발전소(2007년), 즈위티나 복합화력발전소(2010년) 계약이 이어지며 리비아는 대우건설의 중동·아프리카 사업에서 가장 오래, 가장 깊게 관계를 맺어 온 나라로 남았다.

— 여기서 눈에 띄는 것

이 회사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사업의 부침이 소유주의 부침과 정확히 겹친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대우그룹 전체가 흔들리다 1999년 8월 26일 ㈜대우·대우중공업·대우자동차·대우전자 등 12개 계열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그해 11월 김우중 회장과 계열사 사장단이 총사퇴했다. 2000년 대우그룹이 공식 해체되면서 옛 ㈜대우의 건설 부문이 대우건설로 분리 독립했다. 2002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뒤로는 오히려 탄탄대로였다. 2003년 2월에는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를 내놓았고, 이 브랜드는 지금까지 대우건설 주택사업의 얼굴로 남아 있다.

그런데 정작 회사를 크게 뒤흔든 사건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자산관리공사로부터 대우건설 경영권 지분을 약 6조 4천억 원에 사들였는데, 인수 자금의 절반이 넘는 3조 5천억 원가량을 재무적 투자자에게서 빌리면서 매도선택권(풋백옵션)을 걸었다. 대우건설 주가가 약속한 기준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금호아시아나가 그 차액을 물어 주기로 한 계약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로 주가가 주저앉으면서 2009년 말 기준 필요 자금이 4조 원을 넘어섰고,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금호아시아나는 2010년 대우건설을 산업은행에 되팔았고, 그 과정에서 3조 원대 손실을 떠안았다. 이후 약 11년간 대우건설은 산업은행 관리 아래 있다가, 2021년 12월 산업은행이 보유 지분 50.75%를 중흥건설에 2조 671억 원에 매각하면서 지금의 중흥그룹 체제로 넘어갔다. 산업은행도 2011년 지분 인수에 3조 1,785억 원을 투입했던 터라 이 거래로 1조 원 넘는 손실을 봤다. 아파트 한 채, 도로 한 구간을 짓는 회사이면서 동시에 대우그룹 해체·풋백옵션 사태·공기업 매각이라는 한국 경제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그대로 통과해 온 회사인 셈이다.

인천 송도 센트럴파크 수변을 따라 선 푸르지오 등 초고층 주거단지 야경
사진: Vincent van Zeijst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리비아에서 쌓은 ‘해외 시공’ 경험은 최근 들어 ‘해외 개발사업’으로 형태를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베트남 하노이의 스타레이크시티다. 대우건설은 이 신도시 사업에서 시공만 맡은 것이 아니라 기획, 토지보상, 인허가, 자금조달, 분양, 관리·운영까지 개발 전 과정을 직접 수행했고, 국내 건설사가 해외에서 추진한 한국형 신도시 개발의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이 성공을 발판으로 흥옌성 끼엔장 신도시 개발사업 등 베트남·인도네시아에서 후속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다. 발주처가 맡긴 도면대로 짓기만 하던 회사에서, 땅을 사고 도시를 기획해 직접 파는 디벨로퍼로 사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석양 속 사장교 건설 현장
AI로 생성한 이미지(실제 건물 사진 아님)

— 마지막으로

올해 초 별세한 정창선 중흥그룹 창업회장의 지분을 장남 정원주 대우건설 회장이 상속받는 절차가 진행 중이며, 이를 마치면 중흥토건을 통해 대우건설 지분 50.75%를 사실상 단독 지배하는 구조가 완성된다. 정원주 회장의 장녀가 최근 대우건설 미국 자회사에 합류하는 등 오너 3세 경영 준비도 이미 시작됐다. 1973년 영세 건설업체 인수로 출발해 대우그룹 해체와 두 차례의 대주주 교체를 겪고도 시공능력 5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회사가, 다음 세대에는 어떤 이름의 대주주 아래서 어떤 사업을 대표하게 될지는 아직 열려 있는 질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김우중 창업주가 에콰도르와 수단, 리비아로 눈을 돌렸던 1970년대의 방향 감각이, 지금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신도시 개발로 이름과 방식만 바뀐 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고 문헌

자주 묻는 질문

대우건설의 2026년 시공능력평가 순위는 몇 위인가요?

9조 9,249억 원으로 5위입니다. 1위 삼성물산, 2위 현대건설, 3위 GS건설, 4위 현대엔지니어링에 이은 순위이며, 2023년부터 2025년까지 3년 연속 지켜온 3위 자리를 GS건설에 내주고 두 계단 내려온 결과입니다.

대우건설은 리비아에서 공사를 얼마나 했나요?

리비아에서만 163여 건, 누적 110억 달러 규모의 공사를 수행했습니다. 1978년 국내 업체로는 처음 리비아에 진출했고, 발전·석유화학·토목·건축에 걸쳐 트리폴리의 항만과 도로, 1996년 준공한 트리폴리 중앙병원 등을 지었습니다.

대우건설의 대주주는 어떻게 바뀌어 왔나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산업은행을 거쳐 지금은 중흥그룹 체제입니다. 2006년 금호아시아나가 경영권 지분을 약 6조 4천억 원에 사들였다가 2010년 산업은행에 되팔았고, 2021년 12월 산업은행이 보유 지분 50.75%를 중흥건설에 2조 671억 원에 매각했습니다.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는 언제 나왔나요?

2003년 2월에 나왔습니다. 대우건설은 2000년 대우그룹이 공식 해체되면서 옛 ㈜대우의 건설 부문이 분리 독립한 회사이며, 2002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뒤 푸르지오를 내놓았습니다. 이 브랜드는 지금까지 대우건설 주택사업의 얼굴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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