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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건축은 16세기 말 로마에서 시작해 17세기부터 18세기 전반까지 유럽과 중남미로 퍼진 양식이다. 르네상스가 다듬어 놓은 고전 어휘를 그대로 쓰면서도 곡선으로 휘고 부풀린 벽, 거대한 규모, 강한 명암 대비로 보는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쪽을 택했다. 종교개혁에 맞선 가톨릭 교회는 신앙을 눈과 몸으로 설득하려 했고, 절대왕정은 궁전과 광장으로 권력을 드러내려 했다. 이 두 요구가 바로크의 과장된 연출을 낳았다. 17세기 로마의 잔 로렌초 베르니니, 프란체스코 보로미니,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가 양식을 이끌었고, 예수회의 선교망과 궁정 건축을 타고 멀리 퍼졌다.
빛의 출처를 숨기는 설계
바로크 성당은 창의 크기보다 빛이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르게 하는 데 공을 들였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안의 코르나로 예배당(1647~1652)이다. 베르니니는 제단 위 박공 뒤에 창을 숨기고, 그 빛이 대리석 조각 「성녀 테레사의 법열」 위로 떨어지게 한 뒤 뒤편에 금박 청동 광선을 세웠다. 관람자는 창을 보지 못한 채 조각만 하늘의 빛을 받는 장면을 본다. 돔 꼭대기의 채광탑(랜턴)과 돔을 받치는 원통부(드럼)에 뚫린 창도 같은 역할을 해서, 어두운 신랑을 지나 제단과 돔 아래에 이르면 갑자기 밝아지는 순서를 만든다.
베르니니와 보로미니, 같은 도시의 다른 방법
두 사람은 같은 시기 로마에서 경쟁했지만 방향이 달랐다. 베르니니는 조각가 출신답게 건축, 조각, 회화, 빛을 묶어 한 편의 무대처럼 연출했다. 보로미니는 평면 기하 자체를 비틀어 벽이 물결치듯 오목과 볼록을 오가게 했다. 두 사람의 대표작을 나란히 놓으면 바로크가 가진 폭이 보인다.
| 건물 | 설계자 | 시기 | 특징 |
|---|---|---|---|
|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 보로미니 | 1638~1641 건립, 1646 봉헌 | 좁고 불규칙한 모퉁이 대지에 볼록한 곡선으로 짠 평면, 물결치는 정면 |
| 코르나로 예배당 | 베르니니 | 1647~1652 | 숨긴 창의 빛, 조각과 건축을 하나로 합친 연출 |
| 성 베드로 광장 열주 | 베르니니 | 1656~1667 | 네 줄로 늘어선 기둥 284개가 타원형 광장을 팔로 감싸듯 둘러싼다 |
|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 | 베르니니 | 1658~1670 | 입구에서 제단까지보다 가로 방향이 더 긴 타원 평면 |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차이
| 항목 | 르네상스 | 바로크 |
|---|---|---|
| 평면 | 원, 정사각형, 그리스 십자 같은 정적인 중심형 | 타원과 곡선을 겹친 역동적인 평면 |
| 벽과 정면 | 평평한 면에 비례를 맞춰 기둥을 배치한다 | 오목·볼록으로 휘고 기둥을 겹쳐 깊이감을 만든다 |
| 빛 | 고르게 퍼진 밝은 빛 | 어둠과 밝음을 대비시킨 집중된 빛 |
| 장르의 경계 | 건축, 조각, 회화가 각자 자리를 지킨다 | 천장화와 조각이 건축과 섞여 하나의 장면이 된다 |
| 관람자 | 한 자리에서 전체 질서를 조용히 이해한다 | 움직이며 연속된 장면을 체험한다 |
바로크의 연출은 건물 밖 도시로도 나갔다. 교황 식스투스 5세(재위 1585~1590)는 로마의 주요 성당들을 곧은 길로 잇고 길이 만나는 광장에 오벨리스크를 세워, 순례자가 멀리서도 다음 목적지를 알아볼 수 있게 했다. 길 끝에 기념물을 두어 시선을 붙잡는 이 수법은 베르사유 궁전 앞 방사형 도로와 유럽 여러 수도의 도시계획으로 이어졌다.
타원 평면이 만드는 두 개의 축
원형 평면은 중심이 하나라 어느 방향에서도 같지만, 교회는 입구에서 제단으로 향하는 축이 필요하다. 바로크 건축가들이 타원을 즐겨 쓴 이유다. 타원은 중심에 모이는 집중감과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동시에 준다.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는 여기서 한 번 더 비틀어, 들어서자마자 짧은 축 끝의 제단을 마주하게 하고 긴 축은 좌우 예배당 쪽으로 벌려 놓았다. 좁은 대지에서도 방문자가 들어서는 순간 공간 전체를 한눈에 품게 하는 설계다. 바닥 문양과 돔 천장의 장식도 이 타원 윤곽을 반복해 중심을 짚어 준다.
로마 밖으로 퍼진 바로크
바로크는 나라마다 요구에 따라 모습을 달리했다. 프랑스에서는 교회보다 왕권의 무대가 중심이었다. 루이 14세가 1661년부터 확장한 베르사유 궁전은 궁전 본관, 기하학적으로 다듬은 정원, 도시 쪽 방사형 도로를 하나의 축으로 묶었고, 1678~1684년 조성된 거울의 방은 정원 쪽 창과 맞은편 벽의 거울이 빛을 주고받아 긴 회랑을 채운다. 프랑스 궁정 건축은 로마식 곡선을 억제하고 고전적 절제를 섞은 쪽으로 기울었다.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에서는 17세기 말 이후 교회와 수도원이 곡선 평면에 흰 벽, 금박, 천장화를 결합한 밝은 실내로 발전했다. 요한 베른하르트 피셔 폰 에를라흐가 설계한 빈의 카를 성당(1716~1737)은 타원 돔 앞에 로마 트라야누스 기둥을 본뜬 기둥 두 개를 세웠다.
현장에서 바로크 공간을 읽는 순서
- 정면에서 한 걸음 물러나 벽이 광장 쪽으로 불룩 나왔는지,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방문자를 끌어들이는지 본다.
-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밝은 곳을 먼저 찾는다. 대개 제단이나 돔 아래이며, 그 빛을 들이는 창이 숨겨져 있는지 확인한다.
- 바닥 문양이 가리키는 중심과 돔의 중심이 일치하는지 본다.
- 기둥 간격이나 아치 크기가 안쪽으로 갈수록 줄어드는지 살핀다. 실제보다 깊어 보이게 만드는 원근 연출일 수 있다.


참고 문헌
자주 묻는 질문
바로크 건축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됐나요?
16세기 말 로마에서 시작해 17세기부터 18세기 전반까지 유럽과 중남미로 퍼졌습니다. 종교개혁에 맞서 신앙을 눈과 몸으로 설득하려 한 가톨릭 교회와 궁전과 광장으로 권력을 드러내려 한 절대왕정의 요구가 과장된 연출을 낳았습니다.
르네상스 건축과 바로크 건축은 무엇이 다른가요?
평면과 벽, 빛을 다루는 방식이 다릅니다. 르네상스는 원과 정사각형 같은 정적인 중심형 평면에 평평한 벽면, 고르게 퍼진 빛을 씁니다. 바로크는 타원과 곡선을 겹친 평면에 오목·볼록으로 휜 벽, 어둠과 밝음을 대비시킨 집중된 빛을 씁니다.
바로크 성당은 왜 타원형 평면을 많이 썼나요?
중심에 모이는 집중감과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동시에 주기 때문입니다. 원형 평면은 중심이 하나라 어느 방향에서도 같지만 교회는 입구에서 제단으로 향하는 축이 필요했습니다. 산탄드레아 알 퀴리날레가 타원 평면을 쓴 사례입니다.
베르니니와 보로미니의 건축은 어떻게 다른가요?
연출 방식이 다릅니다. 조각가 출신인 베르니니는 건축, 조각, 회화, 빛을 묶어 한 편의 무대처럼 연출했고, 보로미니는 평면 기하 자체를 비틀어 벽이 물결치듯 오목과 볼록을 오가게 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 로마에서 경쟁했습니다.







